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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 1908년 오스만 제국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합스부르크 제국이 보스니아를 합병하게 되는데, 발칸 반도에서 통합 유고슬라비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던 세르비아에서 반발하게 되고 또 같은해에 불가리아 역시 오스만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완전히 독립을 선언했으며, 여기에 더해 아드리아해로의 진출을 위해 알바니아 지역을 노리던 세르비아 왕국을 견제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제국이 알바니아 왕국의 독립을 지원하자 세르비아의 남슬라브 민족주의자들은 뚜껑이 열려버리고 말았다. |
| 19 | 이런 분위기 속에서 러시아 제국의 지원으로 세르비아 왕국, 불가리아 왕국이 서로 접촉하였고, 여기에 세르비아 2중대였던 몬테네그로 왕국과 그리스 왕국이 가담한 발칸 동맹이 성립했다. 그러나 발칸 동맹 국가들은 러시아 제국의 희망사항과는 달리 오스트리아-헝가리보다 오스만 제국의 세력을 발칸 반도에서 몰아내는 데 더 몰두하게 된다. 발칸 동맹의 주도국가인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모두 팽창정책을 추구했지만, 오헝제국으로부터 땅을 뜯어내기에는 아직 오스트리아가 강력했으니 그나마 유럽의 환자로 전락한 오스만 제국이 만만하게 보였던 것. 이것이 제1차 발칸 전쟁(1912년 가을 ~1913년 봄)이 발생하는 원인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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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 그리고 썩어도 준치라고 약소국들의 모임인 발칸 동맹보다 체급이 훨씬 더 큰 오스만이 승리를 거둘 거라는 열강들의 예상을 깨고 발칸 동맹이 압승을 거둬 에노스-미디아 선 서쪽의 모든 영토를 획득했다. 1차 발칸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을 떡실신시킨 발칸 동맹 국가들이었지만, 이제는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뜯어낸 영토를 어떻게 나눠 가질지 싸우게 되었다. |
| 22 | 제1차 발칸 전쟁에서 알바니아와 북마케도니아 지역을 점령한 세르비아였으나 세르비아의 아드리아 해 진출을 두고볼 수 없었던 오헝제국과 이탈리아의 개입으로 알바니아가 독립하면서 그나마 먹은 북마케도니아의 절반을 원래 주기로 되어 있었던 불가리아한테 주는 것을 거부하고, 불가리아 왕국은 불가리아 왕국대로 자신의 몫(산 스테파노 조약 당시의 마케도니아)을 세르비아와 그리스에게 과하게 요구하면서 나머지 발칸 동맹 국가들과 갈등을 빚게 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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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 이 분위기 속에서 보스니아의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세르비아로의 통합을 열망하였고, 자국의 안정을 위하여 작게는 통합 정책, 크게는 제국 내 소수민족 전체가 동등한 주권을 가지는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을 그리고 있었던 제위 계승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독립을 실패하도록 유화 정책을 내세운 적의 수괴나 다름 없었다. 결국 발칸 전쟁이 끝난지 한해가 채 못 되어 보스니아 시찰에 나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암살당하는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
| 25 | 이에 따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게 된다. 대독일주의에 따라 독일도 전쟁에 가담하고, 러시아 역시 범슬라브주의에 따라 가담하며, 프랑스는 독일에 상대하기 위해 참전하고, 영국은 또다시 질서 유지를 위해 참전하게 된다.[* 독일이 슐리펜 계획으로 중립국이던 저지대 국가를 침공한 게 컸다. 영국은 저지대 국가의 안보 위협에 발작한다.] 이에 8월 3일부터 전쟁이 시작된다. |
| 29 | 독일군은 양면전선을 치러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프랑스를 빨리 해치운 다음 러시아로 기차타고 간다는 슐리펜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프랑스를 해치우지 못하고 오히려 벨기에를 공격한 것이 중립국이던 영국의 심기를 건드려 영국이 참전하는 효과를 불러오게 된다. 프랑스를 상대로 독일은 더 이상 진격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참호를 건설하며 참호전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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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 | 참호전에 빠지며 예상보다 포탄을 빠르게 소진하며, 영국과 독일과 프랑스는 전시경제로 돌리며 대량으로 찍어내기 시작한다. 반면 러시아는 그러한 기반이 안 되어 있어서 대량 생산을 못했고, 동부전선에서 가능성을 살짝 [[맛자욱|맛]]본 독일은 비밀리에 오스만 제국과 동맹을 체결하며 오스만도 전쟁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전쟁이 거의 멈춘다... 오스만 제국은 이집트(당시 영국령)의 수에즈 운하를 공격하지만 졸전 끝에 대패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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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 독일은 영국 해군이 유틀란트 반도를 돌아서 동부 독일로 넘어오는 것만 막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너무 방어적이어서 U-보트를 활용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실행한다. 모든 배를 닥치는대로 다 침몰시키는 것이 전략이었다. 그러나 5월 루시타니아 호를 침몰시켰을 때, 미국인이 128명이나 타고 있었기에 미국이 반발했으나, 독일이 해당 작전을 취소하기로 결정하며 미국의 화를 잠재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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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 영국은 서부전선이 교착되자 오스만 제국으로 가기 위해 지브롤터를 통과해 코스탄티니예(이스탄불) 인근의 다르다넬스 해협에 상륙하려고 시도한다. 이것이 최악의 상륙 작전인 갈리폴리 상륙작전이다. 여기서 맹활약을 거둔 케말 파샤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의 인기가 매우 올라가게 된다. 또한 협상국과 동맹국 사이를 [[맛자욱|맛]]만 보던 이탈리아는 이쯤에서 협상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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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 동부전선에서는 5월부터 독일과 합스부르크 제국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서부 등 러시아 서부 영토를 차지하게 되며 동맹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게 된다. 게다가 이쯤에서 불가리아가 동맹국 편으로 참전하며 발칸 내부의 전황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먹게 된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1916년 2월이 되어서야 본래 목적이었던 몬테네그로 왕국과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반란군이 나와서 애를 먹게 된다. |
| 41 | 미국은 본래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 국가를 상대로 물자 수출을 하며 이익을 보았다. 그러나 루시타니아 호 침몰 사건을 겪은 미국은 중립을 유지했으나 지속되는 독일이 사주한 테러가 이어졌다. 가장 미국이 --긁힌--참전한 원인은 칭치머만 전보 사건이다. 수십 년 전 미국-멕시코 전쟁을 통해 불법적으로 땅을 뺏긴[* 거의 절반 정도.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뉴멕시코, 텍사스, 콜로라도 등] 멕시코에게 멕시코 주재 독일 대사를 상대로 독일 외무장관 치머만은 간단히 말해서 '''전쟁에 참전하면, 미국에게 뻇긴 영토를 주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전달하려 한다. 이 내용을 전달받게 된 멕시코 대통령은 이 제안을 고심 끝에 거절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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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 문제는... 영국이 이걸 중간에 해독해 버렸다!![ 독일은 코드북 방식의 암호를 썼는데, 코드북은 어렵고 안전성이 매우 높은 대신 암호 해독 표를 적어놓은 책이 털리면 한순간에 털리게 된다. 문제는 영국이 전쟁 초기 항행 실수로 좌초된 독일의 배를 나포해서 그 표를 털었다는 거다. 이러한 내용을 들은 영국인은 정말인지, 독일이 이간질하려는 의도인지 등 오만가지 생각을 했으나 아무튼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저 내용을 말하자, 미국이 참전하게 된다. |
| 44 | 미국은 중립 노선을 걸었고, 전선이 미국-영국-독일 삼국 간에 모두 연결되어 있었으나 전쟁 발발 후 영국-독일 전선을 끊어버렸고 미국은 독일이 영국과 화해하길 바란다며 그 전선을 빌려줬는데 뒤통수를 친 거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물론 미국의 참전 원인은 단순히 치머만 전보인 것은 아니고, 전부터 쌓여왔던 감정이 폭발한 것이에 가깝다. |
| 47 | 그러나 1917년 3월(율리우스력으로 2월), 러시아에서 혁명이 발생한다. 황제 친위대가 전선에 나가있는 상황에서 수도인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군대가 혁명에 가담하며 러시아의 체제가 전복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부 러시아 공화국은 서방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했지만 전쟁에 질려가던 군인, 시민들은 이를 못마땅하며 자유주의 측인 멘셰비키가 실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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